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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청] 영광군 청소년을 위한 바른이야기(67)영광신문

작성자 : 미라클 (211.228.5.***)

조회 : 300 / 등록일 : 20-02-04 14:37

영광군 청소년을 위한 바른 이야기 67
국형진/ 영광군청소년상담센터소장
newsdaybox_top.gif2020년 02월 03일 (월) 10:35:18영광신문 btn_sendmail.gif press@ygnews.co.krnewsdaybox_dn.gif
  

청소년이 투표하는 나라

지난 국회에서 드디어 청소년(18)의 투표가 가능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법안이 가결이 되어 올해 치러지는 총선부터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의 투표가 가능해졌다.

지난 십수년동안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과 아직 이르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이 합의를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 미루어 온일이기도 하지만 긴급한 현안(?)을 먼저 해결한다는 것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했던 것 같다.

여러 논란이 많았다.

아직 미숙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투표 참여가 부족할 것이다 등 부정적인 여론이 먼저다보니 여태껏 법안 가결이 못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막상 법안이 통과되고 나니 청소년에게 정치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에 교육계를 중심으로 많다. 어쩌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여지껏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생각과 괘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부족하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 아닌가?

그간 우리는 대학생이 되는 청년들에게 선거를 해야 하니 배워야 한다고 대학 강의에 강좌를 개설하고 필수로 들으라고 한 적이 없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청년들에게 교육을 받고서 선거를 하라고 한 적도 없다.

법이 제정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청소년들을 가르침의 대상, 부족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다.

요즘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많이 퇴색 된 것 같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새마을이라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았다. 386세대들 또한 인권과 정치 참여라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았으며,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살아온 X세대들도 문화적 시대정신을 가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대들에게 어떤 시대정신이 필요할까?

참여의 일반화와 청소년의 선거 시대를 지금의 청소년들은 맞고 있다. 인권과 참여의 일반화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인권실천시대가 되어 가는 지표가 되고 있다.

청소년의 선거는 당연한 것이며, 그들의 생각 안에서 판단하는 모든 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돌이켜볼 때 선거권은 모든 인권의 피해자들의 인권시대를 연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그 선거권이 그들의 뜻을 공식적으로, 정치적으로 표현한 선진적 생활정치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1893년 여성의 참정권 탄원서(The 1893 Women's Suffrage Petition)'로 불리는 이 청원서는 당시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서로, '여성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투표권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현재 수도 웰링턴의 뉴질랜드 고문서보관소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

뉴질랜드에 이어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1913년 노르웨이, 1915년 덴마크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1917년 소비에트 연방, 1918년 캐나다, 1919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1869년 와이오밍주, 1890년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캔자스주, 오리건주, 1893년 콜로라도주, 1896년 아이다호주, 유타주 등이 차례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으며, 1차 세계대전 후 연방정부의 헌법 수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 192021세 이상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게 됐다. 1870년 흑인 노예에게 참정권을 줬던 미국은 이때야 여성 참정권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여성과 흑인은 참정권을 시작으로 반인권적이지만 너무 당연히 여겨졌든 그시대의 차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말한다. “지금의 청소년이 얼마나 인권을 보호받으며 살고 있는가. 그 시대의 참정권 쟁취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맞다, 100년도 넘게 지난 일들을 지금의 청소년에게 단순 비교 하는 것은 모순일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수업시간이 많다며 시위를 벌이는 프랑스의 청소년들처럼, 자신들이 살 미래의 환경을 위해 시위를 벌이는 미국의 청소년들처럼,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삶의 인권적 접근이나 환경적 문제, 교육에 관한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반 인권적 삶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인 의견과 참여, 생활정치와 정치행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이제야 할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청소년에게 가르치려 하지마라. 청소년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우리의 일원이며 정치적 일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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